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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오디세이] 자개에 새긴 반세기, 광장시장 한켠에서 이어진 한국의 옻칠 – 뉴스컬처

📰 원문: https://www.nc.press/news/articleView.html?idxno=626476  |  발행: Mon, 14 Sep 2026 14:20:00 +0900
📰 원문 출처: https://www.nc.press/news/articleView.html?idxno=626476
수집 일시: 2026년 09월 14일 06:32

2026-09-14 14:46 (월)

[기억의 오디세이] 자개에 새긴 반세기, 광장시장 한켠에서 이어진 한국의 옻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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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오디세이] 자개에 새긴 반세기, 광장시장 한켠에서 이어진 한국의 옻칠

1977년 문을 연 나전칠기점 ‘신일공예사’… 시장과 관광, 수출의 역사를 품은 서울미래유산

입력 2026.09.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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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오래된 시장을 걷다 보면 한 시대의 생활문화를 간직한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간판과 상품은 달라졌어도 한 자리를 지켜온 가게에는 물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이 쌓인다. 종로구 광장시장 2층에 자리한 나전칠기점도 그중 하나다. 1977년 ‘신일공예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곳은 상호가 바뀌는 동안에도 나전칠기라는 전통공예를 다뤄왔다.

현재는 ‘신일공예사’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한때 ‘국선옻칠’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가게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광장시장에서 나전칠기를 판매해온 시간은 이어졌다. 서울미래유산으로서 이곳을 바라볼 때 주목할 대목도 특정 상품이나 한 사람의 명성보다 오랜 기간 축적된 가게의 역사다.

국선옻칠. 사진=서울시

나전칠기는 조개껍데기를 얇게 갈아 문양을 만들고 이를 옻칠한 나무 기물에 붙이는 전통공예다. 조개껍데기의 빛깔과 각도에 따라 표면에서 드러나는 색이 달라진다. 제작에는 옻칠과 건조, 자개 부착과 연마가 반복적으로 필요하며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한두 달이 걸리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전통공예품으로 인식되지만 나전칠기가 서울의 상업공간에서 판매되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생활필수품보다는 귀한 물건에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고,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소비되던 때도 있었다.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뒤에는 외국 거래처에 전달하는 선물로 선택되기도 했다.

광장시장은 이런 변화가 오가는 장소였다. 1905년 문을 연 광장시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면서 의류와 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품과 공예품이 거래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이 다양했던 만큼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이 서울 소비자와 만나는 통로 역할도 했다.

1970년대에 광장시장에 자리 잡은 신일공예사는 이러한 시장의 성격과 맞물려 성장했다. 나전칠기는 일반적인 시장 물품과는 성격이 달랐지만 외국인 관광객과 고급 선물을 찾는 소비자에게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상품이었다. 시장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전통공예가 상품으로 거래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나전칠기 제품의 판매가 늘었다. 작은 보석함이나 소품처럼 여행자가 가져가기 좋은 상품이 인기를 얻었다. 전통공예가 박물관이나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고 관광산업과 결합해 소비됐던 시기다.

1980년대에는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나전칠기의 쓰임새가 다시 넓어졌다. 외국 거래처에 전달하는 선물로 전통공예품이 활용되면서 자개 제품은 한국을 상징하는 물건 가운데 하나로 소비됐다. 공예와 관광, 무역이 한 상품을 매개로 연결된 셈이다.

국선옻칠 전시장. 사진=서울시

이 같은 변화는 나전칠기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의 공예품이 박물관에 보존되는 유물이라면, 시장에서 판매되는 나전칠기는 현재의 생활과 경제활동 속에서 소비되는 상품이었다. 전통을 이어가는 방식이 반드시 보존과 재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일공예사의 역사는 2대에 걸친 가업의 기록이기도 하다. 창업자인 오세운 대표는 열아홉 살에 서울로 올라와 나전칠기 공장에서 기술을 배웠고, 광장시장에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이후 장남 오명호 대표가 사업에 합류하면서 온라인 판매를 도입하고 제작 기반을 확장했다. 개인의 경력보다 눈여겨볼 부분은 한 가게의 운영 방식이 세대교체와 함께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상호 역시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2012년 ‘국선옻칠’로 이름을 바꿨다가 2020년 다시 ‘신일공예사’로 돌아왔다. 이름의 변화는 브랜드 전략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가게가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해온 기록이기도 하다. 처음 가게를 열었던 시기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에는 오래된 상호가 가진 역사성도 담겨 있다.

국선옻칠 작품. 사진=서울시

가게의 존재는 광장시장이라는 공간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시장은 상품을 사고파는 장소이면서 사람과 정보가 오가는 생활공간이었다. 특정 업종이 한곳에 모여 형성된 전문시장과 달리 광장시장은 다양한 상품과 소비자가 만나는 구조를 갖췄다. 그 안에서 나전칠기점이 오랫동안 영업했다는 사실은 전통공예가 서울의 일상적인 상업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지를 보여준다.

나전칠기 자체도 한국 근현대사의 소비문화를 읽는 자료가 된다. 과거에는 혼수품이나 장식품으로 쓰였고, 관광객에게는 한국을 기억하는 기념품이 됐다. 기업의 해외 진출기에는 국제 교류를 위한 선물로 활용됐다. 같은 공예품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용도로 소비됐다는 점에서 나전칠기는 공예사뿐 아니라 생활사와 산업사의 자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일공예사를 기억하는 일은 오래된 가게 하나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광장시장에서 전통공예품이 거래됐던 방식, 관광객이 한국의 문화를 상품으로 접했던 과정, 기업의 해외 활동 속에서 전통공예가 활용됐던 역사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가게 안에 놓인 자개 제품은 각각 다른 시대의 소비문화를 증언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국선옻칠 작품. 사진=서울시

서울미래유산의 가치는 거대한 문화시설이나 유명 관광지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실제로 이용했던 가게와 시장, 그곳에서 이어진 기술과 상품 역시 도시의 기억을 구성한다. 신일공예사는 광장시장이라는 서울의 대표적인 생활공간에서 1977년부터 나전칠기를 판매해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뚜렷하다.

특히 이곳은 전통공예가 박물관 밖에서 살아 움직이는 상품이었던 시기를 보여준다. 자개로 만든 보석함과 소품은 누군가의 집에 놓이는 물건이었고, 외국인의 여행가방에 담기는 기념품이었으며, 해외 거래처에 전달되는 선물이기도 했다. 나전칠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전통을 소비하고 해외에 소개해온 방식까지 함께 읽힌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가게의 이름과 판매 방식은 달라졌다. 하지만 광장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나전칠기를 다뤄온 사실은 이어졌다. 오래된 가게를 기록하는 일은 이처럼 물건과 사람, 시장과 소비문화가 함께 변해온 시간을 기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신일공예사가 서울미래유산으로 남기는 것은 자개의 반짝임만이 아니다. 1970년대 서울의 시장에서 전통공예가 상품으로 유통되던 모습, 관광과 수출을 통해 나전칠기의 쓰임이 확대되던 과정, 세대교체를 거치며 오래된 가게가 새로운 판매 방식을 받아들인 역사까지 한곳에 겹쳐 있다. 광장시장 2층의 작은 가게가 서울의 생활문화사를 읽는 하나의 기록이 되는 이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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