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일시: 2026년 09월 18일 05:30
[특별기획] 파독간호사 60년, 대한민국 일으킨 하얀 가운의 영광
② ‘한국에서 온 백의의 천사’라는 신화의 탄생
입력 2026.09.18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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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은 누구인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820년 5월 12일 윌리엄 에드워드 나이팅게일과 프랜시스 나이팅게일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나이팅게일은 청소년시절에 “하나님으로부터 사회를 위해 일하라는 소명을 느꼈다”고 한다. 1854년(24세) 크림전쟁 당시 영국군 종군 간호사부대의 리더로 38명의 여성간호사를 인솔하여 터키 야전병원으로 파견되었다.
야전병원은 환자분뇨, 쥐, 부패한 시체 등으로 오염되어 전상보다 전염병(피푸스, 콜레라 등)으로 사망하는 병사가 더 많았다. 나이팅게일은 세탁, 환기, 배수시설 개선, 영양공급 등 위생 개선 노력을 통해 40%에 달하던 사망률을 2% 수준으로 급감시키는 획기적인 간호활동을 했다.
1860년(40세)에는 세계 최초의 전문 간호학교를 런던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하여 간호학의 기반을 정립했다. 특히 ‘간호론’과 ‘병원론’을 저술하여 병원 환기, 조명 및 위생설비 기준을 현대적으로 제정해낸 공로가 인정되어 1907년 영국국왕으로부터 여성 최초로 메리트훈장(Order of Merit)을 수상했다.
그는 간호사의 상징적 인물로 밤마다 램프를 들고 어두운 병동을 돌며 부상병들을 돌보던 모습에서 유래하여 헌신과 돌봄의 상징이 되었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사들이 졸업 및 임관 시 낭독하는 윤리선서로,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간호전문직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상징한다.
나이팅게일 선서의 주요 내용은 전문에서 간호사로서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께 선서한다. 이어서 인간의 생명 존중과 간호 수준의 향상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간호업무상 비밀 유지를 약속한다.
그리고 성심성의껏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고 환자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다짐한다. 나일팅게일 선서는 전 세계 간호사들의 양심선언이다. 우리가 병원에서 만나는 간호사들의 언행에서 고맙게 느끼는 모습들은 살아있는 나이팅게일이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만여명의 한국 간호사의 수준 높은 간호기술과 진심으로 배어나오는 헌신봉사로 독일(당시 서독)에서 커다란 사회적 감동의 주인공으로 이슈가 되었다. 독일의 주요언론과 병원관계자들은 우리 간호사들을 ‘한국에서 온 천사(Korean Angels)’라고 부르며 대대적으로 조명했다는 기록은 아직도 남아있다.
우선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 및 주요지역 일간지들은 한국 간호사 1진 입국 직후부터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었다. 특히 독일 간호사들이 꺼리던 3교대 야간근무나 엑스레이 방사선 방사복(약 7kg)을 입고 일해야하는 심장내과, 중환자실 등 고된 업무를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모습에 감동을 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독일 의료진이 감당하기 힘들었던 노동 부하(負荷)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미소와 인내심은 병원분위기 자체를 바꿨다”며 이들은 ‘코리안 엔젤’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헌신적인 근무자세에 관하여 한국 간호사들은 ‘나이팅게일 선서’에 대한 자신과의 양심적인 약속이었다고 소신있게 답변을 했다.
‘코리안 앤젤’이라고 불렸던 파독간호사들.[장순휘 작가 제공]
그리고 독일언론 기사에는 한국 간호사들의 뛰어난 의료처치술과 숙련도를 다룬 특색있는 보도가 많았다. 특히 엉덩이를 가볍게 툭치면서 주사를 놓은 한국식 주사법은 독일환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통증없이 주사를 놓고, 채혈(Blood Sampling)을 단번에 해내는 주사기술이 경이롭다”는 보도가 터져나왔고, 실제로 “오직 한국 간호사에게만 주사를 맞겠다”고 고집하는 환자들이 늘어나서 한국 간호사들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의 보도제목에는 “손길만 닿아도 통증이 사라지는 간호사”라는 신화적인 주사 기술이 보도되기도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간호사들의 애로사항은 쉽지않은 언어소통이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땅에서 정상인들도 어려운데 환자라는 특수한 상황의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 간호사들은 정성어린 수발과 인간적인 친밀함으로 환자들을 돌봤다.
당시 독일언론은 ‘병실의 온도를 바꾸는 성실함과 인간미’라는 제목을 특집을 보도하면서 “한국여성 특유의 상냥함과 섬세한 돌봄이 만성질환자와 노인 환자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는 극찬이 잇따랐다.
특히 구전되는 파독간호사들이 “병원에서 시체닦는 일을 전담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었다. 응급실에 근무하도록 배치가 되면 사고환자들 가운데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생기는 일이다.
그러면 담당했던 간호사가 수습하는 과정의 업무를 마치 파독간호사들이 전담했다는 식으로 과장되었다. 독일간호사들로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는 끝까지 전담하여 조치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가난한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간호인력들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독일 보건의료 체계의 중요한 인력이자 신뢰의 상징으로 신화가 탄생하고 있었던 시간은 이처럼 우리 간호사분들이 땀과 눈물과 진정성으로 창조한 것이다.
결코 안일한 돈벌이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었다는 진실 앞에서 존경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계속된 한국 간호사들의 호평과 미담사례는 독일 사회와 의료계의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약 3만여 명의 달하는 간호인력난을 겪던 독일 사회에서 한국 간호사들은 ‘독일 보건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낸 구원투수’로 평가 받았으니 대단한 칭송이었다.
한국 간호사들의 성실함은 한국인 전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근면성, 정직성, 고등교육, 검소함, 애국심, 동료애, 애사심 등)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 간호사들의 아름다운 헌신과 봉사는 파독 광부들과 함께 독일 한인사회의 단단한 기반을 다졌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사회에서 고된 병원업무 속에서도 묵묵히 헌신하며 모국의 경계적 기틀과 국격을 높인 파독 간호사들의 역사는 ‘코리안 엔젤’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 간호사들은 독일 병원에서 탁월한 인정과 호평을 받으면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통상 도착하면 병원으로 분류배치가 되었고, 같은 병원으로 가는 동료들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시에서 보내주는 괴테언어학원에 다니면서 3개월간 열심히 독일어를 배웠고, 사전이 너덜너덜 헤질때까지 외우고 또 외우며 독일어를 학습했다. 책임감있게 일하다 보면 식사시간을 놓칠 때가 있었다.
독일간호사들은 말이 잘 안통하는 한국 간호사들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데려가서 빵에 버터를 발라서 스프와 함께 놔두고 문을 닫고 나갔다고하니 그 얼마나 눈물겨운 우정인가?
독일간호사들의 이런 마음은 외국 간호사들과 다르게 한국간호사들에 대한 특별한 인정이었다고 하니 언어와 피부색은 달라도 인간적 진정성을 통한 것 같다. 그리고 응급처치실에서도 독일병원에 일하러 왔다는 책임감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참고 해냈으며, 절대로 불평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독일간호사들이 작으마한 동양의 한국간호사들에게 어려운 일은 자기들이 한다고 말했지만 “한국에서는 백짓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속담이 있다면서 함께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서양격언처럼 한국 간호사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독일사회에 알려지면서 최고의 신부감으로 결혼상담이 쇄도했다. 병원에서 만난 독일 청년의료진들도 데이트를 신청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특히 한국 간호사들의 결혼생활은 현모양처(賢母良妻)라는 한국여성의 가정전통문화대로 독일 시댁식구들에 대한 예의바른 봉양과 배려를 통해 최고의 며느리라는 평을 받았다.
남편에게 내조(內助)라는 한국부부 윤리문화를 통해 감동을 주었기에 독일 남편들은 팔불출(八不出)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교육도 철두철미하여 독일어와 한국어를 직접 가르쳤고,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잊지않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특히 한국 동요와 한국 문화유산을 가르쳐서 아이들의 뿌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으로 잘 심어주었다. 이렇게 자란 3세대들이 현재 독일사회에서 각계 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파독간호사들의 보람이다. 한국 간호사들은 낮에는 가정과 육아를 돌보고 밤에는 병원근무를 하며 잠은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못하면서 죽을 힘을 다해 1인 5역의 책임을 다했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성실, 근면, 검소, 열정적인 한국여인의 진면목을 보여줬다니 ‘코리안 슈퍼우먼(Korean Super Woman)’으로 찬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알고보면 우리들의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다.
그리고 독일 의사 남편과 병원에서 알게되어 결혼을 하고, 개인병원을 개업하면서 한국 간호사 아내는 의과대학을 지원하여 의사의 꿈을 이뤘고, 지역사회에서 사업가로 도전하여 양로원 운영도해서 성공한 사례는 비일비재하게 많다.
독일에서 시인으로, 화가로, 한국문화전도사로, 미술코디네이터로, 환자의 상담사로, 교수로, 사업가로 성공했다. 비록 20대의 한국 아가씨가 80대의 황혼의 시절앞에 서있지만 독일로 향했던 또렷한 목표를 간직하고 살아왔다.
파독간호사 제6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한국 간호사들의 마음에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코리안 엔젤’이라는 영원한 신화의 주인공으로 자랑스러운 삶을 살고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가장 빛나는 여인들은 바로 파독간호사들이시다.
독일을 방문하여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를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장순휘 박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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