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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의 착시’에 취한 한국, 체질개선 골든타임 놓쳐선 안돼

📰 원문: http://www.seoulec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558  |  발행: Sun, 06 Sep 2026 12:42:00 +0900
📰 원문 출처: http://www.seoulec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558
수집 일시: 2026년 09월 06일 22:42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고 조선·방산·원전 수주가 잇따르면서 지금 한국 경제에 낙관론 넘쳐

그러나 좋은 성적표와 건강한 체질은 같은 말이 아니다…한국 경제가 경계해야 할 것은 오히려 ‘호황의 착시’

지금 필요한 것은 ‘K경제 만세’ 아니라 진짜 실력과 국제정세가 준 임시 보너스인지 가려내는 냉정한 자기진단

[윤영호 칼럼] 뜨거운 주식시장을 보면서 한국 경제에 낙관론이 넘친다.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고 조선·방산·원전 수주가 잇따르면서 “역시 한국”이라는 자신감이 살아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은 2025년 1734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2026년 1분기에도 785억 달러로 전년보다 139% 급증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031년까지 543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까지 내놓았다.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좋은 성적표와 건강한 체질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경계해야 할 것은 오히려 호황의 착시다. 반도체·조선·원전·방산의 선전이 한국의 구조적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증거인지, 아니면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파도가 우연히 한국의 배를 밀어주고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위험한 순간은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실패 원인’을 잘못 해석할 때다. 조선업의 부활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조선·해운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글로벌 선주들은 중국 의존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을 다시 계산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선박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이 대체 공급자로 주목받은 측면이 분명하다.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과 생산성이 경쟁력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국제질서의 변화가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한 ‘지정학적 배당’도 무시할 수 없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건설의 본계약을 체결한 것은 한국 원전 산업의 중요한 성과다. 체코 정부가 한국의 제안을 가격과 건설 기간, 보증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조건으로 평가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원전 시장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에너지 안보 전략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 역시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와 네덜란드 ASML의 첨단 노광장비 수출 제한이라는 거대한 기술 장벽이 중국의 추격을 늦추면서 한국 기업에 유리한 시간을 벌어준 측면이 있다. 네델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은 지금까지 중국에 EUV(Extreme Ultraviolet·극자외선) 장비를 한 대도 출하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공급 과잉은 한국 산업의 수익성 압박

말하자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이라면, ASML은 그 공장에서 가장 미세한 회로를 찍어내는 초정밀 ‘인쇄기’를 만드는 사실상 세계 유일회사다.

그러나 수출 통제는 영원한 방파제가 아니다. 오히려 봉쇄가 길어질수록 중국의 자립 의지를 키우는 역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이미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중국 CXMT는 글로벌 DRAM 매출의 약 7%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고, HBM 시장 진입까지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막대한 국가 자본을 앞세워 범용 메모리와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를 밀어붙이는 이상 “중국은 영원히 따라올 수 없다”는 식의 낙관은 전략이 아니라 자기최면이다.

한국의 진짜 문제는 중국이 추격하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새로 만들고 있느냐다. 지난 수십 년 한국 산업의 성공 공식은 명확했다.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 만드는 능력이었다. 후발국으로서는 탁월한 전략이었다. 반도체·조선·철강·석유화학·자동차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의 생산 현장과 숙련된 인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생산성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때 한국의 무기였던 가성비는 중국이 더 싼 가격과 더 큰 규모로 추격하는 순간 방어막이 아니라 족쇄가 된다.

철강과 석유화학이 이미 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공급 과잉은 한국 산업의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포항과 여수 같은 산업도시의 고민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실적 문제가 아니다. 과거 산업화의 성공 모델이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구조적 경고다.

반도체라고 영원히 안전지대일 수 없다. 지금 한국은 AI 붐에 힘입어 HBM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HBM의 호황이 한국 반도체 전체의 경쟁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범용 DRAM의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고 국내 업체가 AI용 메모리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레거시 메모리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중국이 범용 제품에서 가격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한국 기업의 수익 구조가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TV 제공]

한국이 직시해야 할 ‘횡재의 착시’…국제정세 바뀌면 언제든 사라져

더구나 기술의 세계에는 ‘영원한 격차’가 없다. 오늘 첨단이 내일 범용이 된다. 오늘 캐시카우(Cash Cow)가 내일 사양산업이 되기 전에 다음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캐시카우는 영원한 젖소가 아니다. 오늘 황금알을 낳는 사업도 기술의 시계가 한 바퀴 돌면 족쇄가 되어 사양산업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정학적 갈등은 한국에 기회를 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반도체·조선·배터리·방산·원전 등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지정학적 이익은 기업이 만든 독점적 기술처럼 영구히 소유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국제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사라진다. 남이 만든 적의 틈은 기회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함정이 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가 이 기회를 체질 개선의 계기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호황이 찾아오면 구조개혁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낡은 규제, 교육의 획일성, 서비스산업의 낮은 생산성, 기업의 도전을 가로막는 각종 제도는 그대로인데 반도체와 조선의 실적이 좋아지면 모든 문제가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정치는 선심성 정책 경쟁에 몰두하고, 기업은 기존 사업의 수익성 방어에 급급하며, 사회는 변화보다 기득권의 보존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반도체가 있고 조선이 있고 원전이 있으니 괜찮다”고 계속 말할 수 있겠는가.

국가는 몇 개의 우량 기업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특히 서비스산업과 내수산업의 생산성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고 K콘텐츠가 세계 시장을 넓혀가는데도 일부 현장에서는 여전히 낡은 영업 관행과 단기적인 가격 장사에 머물러 있다. 관광객 한 명에게 바가지를 씌워 얻는 하루의 이익보다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잃는 장기적 신뢰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의 과거경험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외부 충격 돈 뒤에 움직여서는 늦어…호황일 때 구조개혁 시작해야

한국의 다음 경쟁력은 공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금융·의료·교육·관광·물류·법률·콘텐츠 같은 서비스 영역에서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가 중요하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이는 시대에 과거 산업시대의 고용·임금·근로 규칙만 고집한다면 기술혁신의 과실은 커녕 일자리 자체를 잃을 수 있다.

규제도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처절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기업은 부채를 줄였고 금융 시스템은 개혁됐으며 노동시장과 기업의 경영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 충격이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결단이 필요하다. 다만 외환위기처럼 외부에서 충격이 닥친 뒤에야 움직여서는 늦다. 지금은 반대로 호황일 때 스스로 구조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돈을 벌 때 체질을 고치는 기업은 강자가 되고, 돈을 벌 때 흥청망청하는 기업은 다음 불황에 무너진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K경제 만세’가 아니다. 우리가 왜 잘하고 있는지, 그 가운데 무엇이 진짜 실력이고 무엇이 국제정세가 준 임시 보너스인지 가려내는 냉정한 자기진단이다. ‘현재의 1등’을 지키는 전략만이 아니라 ‘다음 1등’을 만드는 전략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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