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일시: 2026년 08월 09일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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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_2026, 증발자들. 사진=금호미술관
금호미술관은 2026년 8월 7일(금)부터 2026년 10월 18일(일)까지 기획전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박혜수 작가의 열두 번째 개인전으로, 2010년 금호미술관의 대표 공모 프로그램인 제10회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된 박혜수를 16년 만에 다시 조명하는 자리다.
작가 박혜수(b.1974)는 조각‧설치를 기반으로 다학제적이고 참여적인 예술 작업을 전개해 온 시각예술가이다. 그는 2010년 제10회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된 이후 2014년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9’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번 전시는 박혜수가 초기 작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질문들을 관객 참여를 중심으로 풀어내며, 조각,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 등 장르를 가로지르며 전개된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이어온 대화 프로젝트의 네 번째 시리즈인 ’우리가 모르는 우리’(2019~)를 폭넓게 조망하며 한국 사회의 집단 정체성인 ‘우리’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개인의 심리를 ‘진실’이라는 화두 아래 엮어낸다.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혜수 작가(오른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번 전시는 관객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객이 작품에 개입해서 경험해야만 비로소 그 작업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금호미술관 송지원 학예사는 전시 기획에 대해 “작가의 작업이 워낙 다원적인 작업들이 많기 때문에 작품 하나하나를 구현하기 위해서 배우가 있어야 되고 영상 음향 기술진, 설치팀, 제작 업체, 디자이너 등 정말 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금호미술관 학예사였고 지금은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인 이경미 기획자가 진심을 다해 전시를 구성했다”라고 전했다.
박혜수_2026, 우리에 갇힌 우리. 사진=금호미술관
1층에서 전시의 문을 여는 작품 ‘우리에 갇힌 우리’2026)는 집단에 관한 설문을 바탕으로 제작된 관객 반응형 설치 작업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초반 설문 작업을 2~3년 동안 진행해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분석하는데 2~3년이 걸렸다. 그 다음 작가가 어떤 결론을 낸다. 그걸 다시 개인전으로 표출하고 개인전 이후에 다원 작품이나 출판을 하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짧게는 7~8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는 다행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기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았다.
박혜수 작가는 “2019년 조국 사태가 있었다. 그 시기의 덕을 좀 봤던 것 같다. 광화문과 서초동 양쪽으로 진영이 쪼개져 있었다. 그래서 당시 작업에 사람들이 많이 호응 했었고 양극화된 집단주의에 대한 작업을 좀더 수월히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관객은 전시장 입구의 성향 분류 설문을 거치며 특정 집단에 귀속된다. ‘현실주의자’부터 ‘평화주의자’, ‘개인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 개로 분류된 그룹은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성향을 보여준다. 능력치, 강점과 취약성 등 각 그룹에 해당하는 정보는 암호화된 코드를 통해 각 집단끼리만 공유되며 외부에는 철저히 차단된다. 이처럼 ‘내부의 결속’을 요새화하는 집단의 속성은 국민을 정의하는 기준에서도 흥미롭게 이어진다.
한편, 그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 관객은 공동체를 해치는 ‘침입자’로 간주된다. 이들이 나타나는 순간 전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고, 이들은 ‘공공의 적’이 되어 공간 밖으로 퇴출당한다.
박혜수_2026, 나라 없는 사람 Ver.26. 사진=금호미술관
2층 전시장은 자본이 진실의 자리를 대체하고, 극단적인 편 가르기 속에서 진실이 무가치해진 양극화 사회의 단상을 사운드 설치 및 영상 작업으로 조명한다. 설치 작업 ‘나라 없는 사람 Ver.26’(2026)은 분쇄된 화폐와 6채널 사운드 모빌, 서치라이트 조명 등으로 구성된다. 천장 높이까지 쌓아 올린 화폐 더미는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 낳은 거대한 탑을 연상시키고, 공간을 쉴 새 없이 가르는 서치라이트는 부를 사수하려는 기득권의 삼엄한 감시망처럼 작동한다. 이 긴장감 넘치는 풍경 위로 ‘내가 꿈꾸는 나라’에 관한 탈북민과 관객들의 다층적인 목소리가 부유하며 하나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이룬다.
박혜수_2026, 누가 아기 신발을 팔았을까. 사진=금호미술관
안쪽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2채널 영상 작업 ‘누가 아기 신발을 팔았을까?’(2026)는 헤밍웨이의 글로 알려진 전설적인 여섯 단어 소설,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았음.(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문학적 장치를 차용하여, 오늘날 대한민국 양극화의 지형도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영상은 세대, 성별, 정치 성향에 따라 극단적으로 분열된 이들이 각 집단의 대표로 나서, ‘누가 아기 신발을 팔았는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상황을 연출한다.
영상 속에서는 6명의 극단주의자들이 서로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기 신발을 누가 팔았는지 라는 아주 단순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말이 각각의 극단주의자들에게 가면 얼마나 왜곡되고 진실이 가려지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업이다.
2층과 3층의 계단 창문에 설치된 오브제 작업 ’The Three Wise Monkeys’와 ‘귀신이 되기까지 9년’은 외부의 악으로부터 내면의 평정을 수호하려 했던 고전의 ‘세 마리 원숭이(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의 수행적 태도를 변주하여, 진실을 방관하는 우리 시대의 침묵을 꼬집는다.
박혜수_2026, 휴먼렌탈서비스 듣기만 하는 사람. 사진=금호미술관
3층 전시장에 들어오면 퍼펙트 패밀리의 직원(배우)이 앉아 있다. 관객은 지시문을 따라 배우에게 말을 하고 배우는 뭔가를 건넨다. 관객은 30분 동안 이 배우를 렌탈해서 미술관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관객은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나의 어떤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남한테 털어놓을 수도 있다.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대여하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이다.
박혜수_2026, 증발자들.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3층 전시장 안쪽은 가상의 기업 (주)퍼펙트패밀리의 사무실이자,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소개하고 체험하는 장소로 변모한다.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라는 집단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에는 가족이 있다고 본다. 이에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모순을 짚어내고, 감정마저 외주화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자 ‘가짜 관계’를 판매하는 기업을 구현해왔다다.
‘증발자들’(2026)은 (주)퍼펙트패밀리에서 수집된 사연을 바탕으로 2024년 발표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를 재구성한 4채널 영상설치 작업이다. 연극과 영화의 형식을 결합한 당시 공연 실황을 기록한 영상과 실제 공연에 사용된 소품을 함께 선보이며, 작품은 퍼펙트패밀리 의뢰자 희도, 경희, 수남 세 인물의 서사를 따라간다. AI 자율화로 일자리를 잃고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며 고립된 정비사 희도,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인 ‘독박 돌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가짜 결혼을 택한 경희, 타인의 가짜 관계를 설계하면서도 정작 아이의 위기 앞에 흔들리는 대표 수남의 숨겨진 비밀을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작업은 저마다의 사연을 견디지 못하여 자발적 실종인 ‘인간 증발’을 선택한 이들의 궤적을 추적한다. 작가는 이 가상의 회사가 판매하는 ‘꾸며진 관계’들이 비록 진짜는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는 서늘한 현실임을 역설한다.
박혜수_2026, 그림자에게 몸을 맡기다. 사진=금호미술관
지하 1층은 목소리 큰 소수와 침묵하는 다수라는 왜곡된 구조 속에서 수난당하는 타자들을 조명하고, 마침내 관객 스스로가 연대의 실마리를 찾도록 이끄는 작업으로 구성된다. 앞선 작업들의 문제의식을 넘어, 탈진실 사회를 뚫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대안적 출구를 모색하는 장이다.
사운드 기반의 인터렉티브 설치 작품 ‘그림자에게 몸을 맡기다’(2026)는 15세기의 마녀 심판 문헌과 17세기 마녀재판, 20세기 초 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 최근 극우주의자들의 혐오발언을 엮어내며, 인류 역사에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마녀사냥의 메커니즘을 고발한다. 전시장 내부는 혐오를 조장하는 선동가의 과장된 소리, 침묵을 강요하는 음성, 그리고 피해자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뒤섞인 어둠의 공간이다. 이 혼돈의 공간 중심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블랙 미러’는 관객에게 방관과 실천 사이의 내적 갈등을 유도한다. 거울 앞에 선 관객이 질문에 용기를 내어 응답하는 순간, 전시장을 메우던 소음은 사라지고 어둠이 걷힌다. 관객은 바닥에서 자신이 밟고 서 있던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발견하며, 침묵의 무게에 대한 강렬한 성찰을 경험한다.
한편 안쪽 전시장에서는 전시의 메시지를 실천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토론극장: 우리_들’이 자리한다. 관객을 토론의 주체이자 피실험자로 설정한 ‘토론극장’은 한국 사회의 첨예한 이슈들을 게임, 연극, 강연의 형식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관객 참여형 렉처 퍼포먼스이다. 관객은 다양한 시나리오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가치들을 저울질하고 직접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집단이기주의를 넘어서는 합의의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고 실험한다. 전시 기간 중에는 진실을 둘러싼 사회적 양상을 다각도로 고찰하는 프로그램이 개최될 예정이다.
금호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박혜수가 던지는 질문,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이는 집단의 결속과 생존을 위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침묵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실은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되는지를 되묻는 시도다. 이로써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진실의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전시를 관람한 이후에도 관객 각자의 삶 속에서 박혜수가 던진 질문들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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